일과 그 밖의 시간이 어디에서 나뉘는지 잘 알 수 없게 되는 때가 있다. 지난 몇 주가 바로 그랬다.
지금 팀 안에 있는 관계들이 일본과 한국 여행에서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만났고, 다시 만나 함께 작업해 왔다. 다만 이번 여행은 그 관계를 더 깊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귀국했다고 해서 그 시간이 곧바로 끝나지는 않았다.
우리 중 몇몇에게는 함께 지내는 생활이 이미 8월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과 한국에서 돌아온 뒤 팀의 일부는 프레드의 집에, 일부는 내 집에 머물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계속 작업에 참여했다. 그렇게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일하기도 하고, 화상 회의로 만나기도 하고, 모두 함께하거나 따로 움직이기도 하면서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파리 스튜디오 주간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그 일주일은 고립된 한 주가 아니었다. 오히려 몇 주 동안 함께 살고 함께 일해 온 시간의 정점에 가까웠다. 대화와 웃음, 꼭 좋지 않은 순간에 떠오르는 아이디어,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음향 엔지니어들에게 늘 이상적이지만은 않았던 환경까지 포함한, 조금 이상하고 즐거운 임시 공동체가 생겼다.
다이치와 켄지는 아마 이 기간에 ‘인내’라는 단어의 새로운 뜻을 발견했을 것이다. 대화가 이어지고, 사람들이 방을 오가고, 옆에서 다른 작업이 진행되고, 하필 녹음 중이라는 사실을 누군가가 잊어버리는 상황 속에서 몇 분간의 완전한 정적을 확보하는 것조차 하나의 성취가 되곤 했다. 그들의 절망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꽤 큰 웃음거리였다. 당사자들에게도 그만큼 재미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이 유쾌한 소란 속에서도 우리는 정말 많은 일을 했다. 파리의 스튜디오 주간은 특히 빽빽했다. 보통 아침 8시 30분쯤 시작했고, 어떤 날은 오후 6시에 끝났지만 8시, 10시, 때로는 11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결과도 분명하다. 첫 번째 Le Pavé 앨범은 이제 거의 전부 마무리되었고, FRED EP는 완전히 완성되어 발매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여러 언어 버전이 진전되었고, 마스터가 완성되었으며, 비주얼이 준비되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겼다. 아직 미래의 일처럼 보이던 몇몇 프로젝트도 훨씬 구체적인 형태를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업량보다 더 강하게 남는 것은 그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우리 사이에는 눈에 띄게 자연스러운 흐름이 생겼다.
프레드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한두 연을 가져오면, 누군가가 그 아이디어를 받아 악기를 잡는다. 몇 개의 음이 생기고, 멜로디 한 줄이 시험되고, 한 목소리가 들어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속도를 조금 늦추자거나, 강세를 옮기자거나, 단어 하나를 그냥 더 숨 쉬게 하자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십 분 전에는 없었던 것이 노래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런 장면을 여러 번 겪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창작 팀에게 긴 설명 없이도 상대가 가려는 방향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가장 귀한 변화 중 하나다.
서로 만나는 지점을 배우는 목소리들
물론 이런 자연스러움이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다. 특히 보컬에서는 꽤 많은 실제 작업이 있었다.
프레드와 민아의 인간적인 친밀감은 이제 팀 안의 농담거리가 될 만큼 분명해졌지만, 그 사이에는 또 하나의 관계가 만들어졌다. 바로 예술적이고 보컬적인 호흡이다.
우리의 보컬 코치 지니와 김은 이 부분을 많이 다듬었다. 목표는 어느 한쪽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음역을 억지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두 목소리가 실제로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지를 찾는 일이었다.
이제 그 접점들이 분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프레드가 무리하지 않고 낼 수 있는 고음의 끝에 도달하면 민아가 자연스럽게 이어받을 수 있다. 또 어떤 순간에는 두 사람의 음역이 충분히 겹쳐서 그 지점을 이용해 서로 응답하거나, 한 프레이즈를 한 목소리에서 다른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다. 두 목소리가 닮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상 밖의 듀엣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핵심은 서로 다른 두 보컬의 정체성이 누구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은 채 정확히 맞닿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아키코와도 같은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연습실에서만 가능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이 기간에 완성된 마스터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녹음 뒤에 손봐야 할 부분이 매우 적었고, 실제로 목소리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을 찾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꽤 중요한 변화이고, 지금 가장 기대되는 변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누구도 자기 역할 안에 갇히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팀의 다른 관계에서도 그대로 보이고, 켄지와 다이치가 좋은 예다.
프레드는 지난 몇 주 동안 두 사람과 훨씬 가까워졌다. 둘은 일본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전염될 만큼 열정적이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설명하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바로잡고, 미처 보지 못했을 디테일을 짚어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그대로 창작의 재료가 된다.
일본을 다룰 앞으로의 Aya 프로젝트는 이미 이런 대화에서 많은 것을 얻고 있다.
켄지와 다이치는 음향 엔지니어지만, 그렇다고 예술적인 논의에서 물러나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기억과 레퍼런스, 시선은 새로운 재료를 가져오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며, 우리가 어떤 방향을 다시 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 그룹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역할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경계가 되지는 않는다. 뮤지션이 가사 아이디어를 던질 수 있고, 음향 엔지니어가 하나의 예술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으며, 가수가 음악적 방향을 제안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오간다.
그리고 장난도 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 팀만의 농담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중 상당 부분은 아마 말릭의 책임일 것이다.
우리는 그가 목소리만으로 꽤 놀라운 수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레게를 정말 좋아하는 덕분에 기억에 남을 패러디 몇 개가 탄생했고, 곧 랩과 래거, 그리고 분류하기 어려운 다른 무언가들까지 이어졌다.
그는 일본어도 배우기로 했다. 아키코는 그 과정을 그리 관대하지 않은 친절로 지켜보고 있다. 어느 순간에는 프레드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려 말릭의 현재 일본어 실력을 묘사하기도 했다. 대략 ‘스페인 소가 일본어를 하는 것 같다’는 식이었는데, 아프리카 소였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말을 듣고 모두 크게 웃었다는 건 기억한다.
말릭은 어느 날 갑자기 신부 역할도 자처했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한국 체류 때로 돌아가야 한다. 프레드는 부산에서 민아와 함께 그녀의 부모님 댁에서 하루를 보냈다. 프레드에게도 의미가 큰 하루였고,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쌓여 있던 신뢰를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말릭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프레드는 부모님을 만났고 가족과 하루를 보냈으니 ‘부모님의 허락’은 이미 받은 셈이었다. 프레드와 민아의 친밀감이 이미 팀의 단골 놀림거리였던 만큼, 말릭은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고 판단했고 적당히 엄숙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결혼식을 진행했다.
증명서를 요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키코에게는 또 다른 비공식 직함이 생겼다. 프레드의 ‘일본인 딸’이다. 이 역시 두 사람 사이에 보이는 애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별명이었고, 어느새 팀의 말 속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유치한 장난이다. 하지만 그런 장난이 있다는 게 좋다. 서로에게 생긴 신뢰를 아주 잘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키코는 그저 한잔하고 싶었을 뿐이다
반대로 어떤 농담은 완전히 우연히 시작된다.
어느 저녁 파리를 걷다가 아키코가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곳을 발견하고 한잔하러 들어가자고 했다. 단 하나의 작은 문제를 놓쳤다. 그곳은 사실 평범한 바가 아니었다.
스윙어 클럽이었다.
우리가 아키코가 본의 아니게 어디로 모두를 데려가려 했는지 알아차리고 설명해주자, 그녀의 얼굴은 정말 모란꽃처럼 빨개졌다.
너무 당황해하길래, 물론 누구도 친절하게 화제를 바꿔주지 않았다. 그날 남은 시간 동안 아키코는 공식적으로 팀 전체를 타락시키고 방탕의 길로 이끄려 한 사람으로 지정되었다.
그녀는 열심히 항의했고, 당연히 그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파리에서 한국을 찾다가
또 다른 저녁에는 ‘한국 음식점’이라고 소개된 곳에 들어갔다. 메뉴만 봤을 때는 좋은 선택처럼 보였다. 음식이 나오고 나서 민아와 나는 약간의 의문을 가졌다.
아주 많은 의문을.
그곳은 중국인이 운영하고 있었고, 음식은 민아와 내가 알고 있는 한국 음식과는 꽤 먼 관계에 있었다. 어떤 흔적은 분명 있었지만, 아주 멀리서 보고 조금 너그럽게 생각해야 했다.
그래도 그 저녁 덕분에 음식이 다른 나라로 이동하고, 현지화되고, 섞이고, 때로는 원래 무엇이라고 불렸는지와 꽤 다른 모습이 되는 과정에 대해 오래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많이 웃었다.
함께 일한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
이 몇 주 동안 관계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민아와 프레드는 정말 가까워졌다. 사람 사이의 친밀함은 눈에 보이고, 이제는 예술적으로도 들리기 시작한다.
프레드는 켄지와 다이치와도 훨씬 가까워졌다. 아키코는 특유의 에너지와 호기심으로 이 조금 이상한 예술 가족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를 찾았다. 가수와 뮤지션, 기술 스태프는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이제는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조금씩 예상한다. 누가 끝까지 아이디어를 지킬지, 누가 최악의 순간에 농담을 던질지, 누가 결국 ‘제발 5분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해야 제대로 녹음할 수 있을지도 안다.
그리고 프레드와 나도 있다.
우리의 작업 관계 역시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제 팀은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꽤 정확히 이해하는 것 같다. 프레드는 빠르게, 많이, 때로는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생각한다. 아이디어는 정리되기도 전에 먼저 도착하는 경우가 많다.
내 역할은 그 아이디어들을 지나가는 순간 붙잡아 어떤 것들이 함께 갈 수 있는지, 무엇은 기다려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나의 일관된 예술적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프레드는 이것을 내가 더 ‘각이 잡혀 있다’고 표현한다.
다른 표현을 고를 수도 있겠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일과 생각, 마음의 거리 모두에서 아주 가까이 작업한다. 서로 다른 길로 출발했는데 같은 결론에 도착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팀은 그 점을 정확히 이해했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신뢰가 나머지 모든 일을 훨씬 쉽게 만든다.
스튜디오가 끝난 뒤의 파리
열 시간이나 열두 시간을 일한 뒤라면 집에 돌아가 잠을 자는 것이 당연히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우리도 가끔은 그렇게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밥을 먹어야 했고, 일단 밖으로 나오면 파리가 그 뒤를 알아서 이어갔다.
우리는 저녁마다 걸으며 조금 덜 뻔한 장소들을 찾아다녔고, 가능한 한 엽서 속 파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민아는 몽마르트르와 사랑에 빠졌고, 아키코는 우리가 허락했다면 앵발리드에서 텐트를 치고 지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호기심과 놀라움, 흥분이 섞인 표정으로 파리의 여러 장소를 발견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물론 모든 저녁이 그렇게 얌전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내 집에서 예상보다 훨씬, 훨씬 늦게까지 이어졌다. 몇 잔 마신 뒤 몹시 즐거워진 클레르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Patricia Kaas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말릭이 합류했고, 그다음에는 앙투안도 올라갔다.
새벽 5시 30분, 우리는 결국 즉석 무대가 된 테이블 위에서 세 사람이 놀라운 열정과 그보다 훨씬 부족한 조용함으로 Patricia Kaas를 부르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마침내 이웃이 문을 두드려 혹시 이제는 조금 조용히 해줄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꽤 난처했다. 새벽 5시 30분에 이것이 ‘업무 회의’였다고 진지하게 설명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음 날 출근해야 했던 내 남편이 그 이웃보다 먼저 항의하러 나오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랍다. 그도 프로젝트에 기여한 공로로 특별히 이름을 올려야 할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소리를 낮췄다.
그럴 시간이긴 했다.
집이 조금 조용해졌다
오늘 모두가 돌아갔고, 민아도 아키코도 별로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누구도 이 시간이 끝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이 진짜 이별은 아니라고 다시 말해주어야 했다. 앞으로도 화상 회의가 있고, 보컬 녹음과 촬영이 있고, 계속 이어갈 곡과 여러 언어 버전, 프로젝트가 있다. 프랑스와 한국, 일본 사이에서 작업은 계속 움직일 것이고, 우리는 11월 말에 다시 직접 만나기로 되어 있다.
물론 지난 몇 주 동안 무엇을 만들었는지 셀 수는 있다. 완성된 노래, 앞으로 나아간 프로젝트, 스튜디오에서 보낸 시간, 새로 생긴 아이디어, 그리고 앞으로 몇 달에 걸쳐 자리를 찾아갈 모든 것들.
하지만 어쩌면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치로 재기 훨씬 어렵다.
우리는 떠나기 전부터 이미 팀이었다. 한 번의 여행으로 갑자기 가까워진 것도 아니다.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다. 다만 거의 계속 함께 지낸 몇 주가 원래 있던 무언가를 더 깊게 만들었다.
너무 시끄러워 망친 한 테이크, 서로 만나는 법을 배우는 두 목소리, 우연처럼 찾아온 멜로디, 말릭의 성대모사, 가짜 결혼식, 가짜 한국 식당, 스윙어 클럽 앞의 아키코, 그리고 새벽 5시 30분에 너무 크게 울려 퍼진 Patricia Kaas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함께 일하는 법, 서로를 이해하는 법, 신뢰하는 법, 무엇보다 많이 웃는 법을 조금 더 배웠다.
이런 것은 달력에 넣어 계획할 수 없다.
아마 그래서 더 값진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