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나 지정학, 책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훨씬 단순하게, 거의 우연처럼 이미지와 얼굴, 음악을 통해 한국을 만났다. 지수는 그 첫 얼굴들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그저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을 바라보듯 그녀를 보았고, 그 이상을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K-pop이 내 삶에 들어왔고 드라마가 뒤따랐다. 처음에는 단순한 끌림이나 호기심이었던 것이 조금씩 더 깊은 애착으로 변했다.
곧 나는 이미지 자체보다 그 뒤에서 느껴지는 것들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절제와 조심스러움, 말하는 방식과 말하지 않는 방식, 그리고 내가 익숙했던 것과는 다른 길로 드러나는 감정의 밀도였다. 보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 문화를 정말 가까이 이해하고 싶다면 내 시선 자체를 옮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GYEOL — 결이 태어났다.
GYEOL은 하나의 앨범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여러 앨범과 한국에 다가가는 여러 방식을 품을 수 있도록 만든 컬렉션이다. ‘결’이라는 말은 표면만 볼 때는 보이지 않다가 충분히 가까이 다가갔을 때 드러나는 재질과 흐름, 결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한 나라를 규정하거나 그곳 사람들을 대신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가까이 보고, 내가 보는 것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려 하고, 끝내 이해되지 않는 것이 남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한국과의 관계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한국인들과 계속 함께 일하면서 훨씬 풍부해졌다. Ji, Min-Ah, Kim, Ji-Ni는 저마다의 시선과 반응, 느끼고 이해하는 방식을 통해 내가 생각하고 쓸 재료를 훨씬 더 많이 준다. 완성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더 잘 이해하게 하고 다른 것을 새로 발견하게 하며, 결국 그 재료를 노래 속에서 더 깊이 파고들게 만든다.
그렇다고 한국을 이상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 애착은 한국을 완벽한 나라로 만들어 놓는다고 더 깊어지는 것이 아니다. 알아갈수록 긴장과 제약, 모순,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면도 더 많이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관계가 흥미롭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좋아하는 것만 보는 일이 아니다.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호기심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 불편한 것, 저항하는 것까지 받아들일 때 더 깊어진다.
현재 보이는 GYEOL의 첫 세 곡은 이미 이 시선의 이동을 이야기한다. Murmure de Corée는 아마 가장 내밀한 곡이다.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정확히 알기도 전에 한국이라는 존재가 조금씩 내 안에 자리 잡은 과정을 담는다. Viens là où bat le cœur는 이후 내게 중요해진 태도를 말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말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내 시선을 옮기는 법을 배우러 왔다. 그리고 Sous les images는 아름다운 표면만 바라보는 데서 멈추고 그 아래의 층을 이해하려 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이 세 곡은 ‘GYEOL 앨범’이 아니다. 여러 앨범과 여러 주제, 여러 갈래의 길로 자라날 컬렉션의 첫 조각들이다. GYEOL은 내가 새롭게 발견하는 것,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그리고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들과 함께 계속 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태도는 내가 왜 한국어를 배웠는지도 설명해 준다. 언어 목록에 하나를 더하기 위해서도, 상황에 맞는 몇 마디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존댓말의 층위, 침묵, 함축, 이미지, 생각을 구성하는 방식 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한국어로 된 시를 읽고, 프랑스어 번역이 무엇을 뜻하는지만이 아니라 왜 그 시가 한국어 안에서 아름다운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GYEOL 옆에는 일본을 향한 또 하나의 컬렉션 AYA — 綾가 이미 존재한다. 길은 매우 비슷하지만 관계의 성격은 같지 않다. 한국에는 내게 깊이 사랑 이야기 같은 무언가가 있다. 일본은 매우 강한 지적·역사적·문화적·사회적 호기심과 깊은 애착의 대상이지만, 그 감정은 한국과는 다른 종류다.
여기에서도 사람들과의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 Akiko, Yumi, Kenji, Daichi와 계속 함께 일하면서 얻는 시선과 감각, 사물을 대하는 방식은 내 호기심을 더 키우고 더 멀리 가고 싶게 한다. 일본어도 같은 이유로 배웠다. 언어 하나를 더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문화의 규칙과 침묵,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언젠가는 프랑스어 번역을 보기 전에 일본어 텍스트가 자기 언어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움직임이 AYA의 문을 열었다. GYEOL과 마찬가지로 AYA도 여러 앨범을 품을 컬렉션이다. 다만 지금은 아직 첫 목소리가 되어 줄 곡이 없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닫혀 있다. 맞는 곡이 찾아오는 순간 열릴 것이다.
GYEOL은 이미 길을 시작했다. 어디까지 나를 데려갈지, 몇 장의 앨범을 품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가 좋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은 하나뿐이다. 이제 한국을 바라볼 때, 이미지에서 멈추고 싶지 않다.
그 결에 더 가까이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