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D에서는 대개 앨범이 노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들이 앨범을 결정한다. 처음부터 콘셉트를 완전히 정하고, 열두 곡을 배치하고, 음악적 색까지 미리 고정한 표를 만들어 놓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면 설명하기는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FRED는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먼저 한 곡이 온다. 한 문장으로, 한 이미지로, 기억이나 분노로, 어떤 얼굴이나 거리의 빛으로. 오래전에 쓴 글이 다시 돌아올 때도 있고, 새로운 생각에서 시작될 때도 있다. 때로는 그저 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가 결국 목소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또 다른 노래가 온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데도 같은 곳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온도를 품고, 가까운 문을 열고, 자신도 모르게 먼저 있던 곡에 답한다. 그때 나는 아직 앨범을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별자리 같은 것을 본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여러 곡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같은 긴장, 같은 상처, 같은 빛, 비슷한 방식의 탐색을 공유한다. 그때 앨범은 노래를 억지로 넣는 상자가 아니라, 노래들 둘레에 지어지는 집처럼 나타난다.
GYEOL이 좋은 예다. 처음에는 한국을 둘러싼 하나의 앨범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작업이 진행될수록 훨씬 넓은 영역이 드러났다. 주제와 기억, 도시와 뿌리, 모순과 목소리가 한 장의 음반이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문을 열었다. 그래서 GYEOL은 여러 앨범이나 EP를 품을 수 있는 컬렉션이 되었다. 곡보다 먼저 틀을 정한 것이 아니라, 곡과 소재가 스스로 틀을 넓힌 것이다.
다른 유니버스도 마찬가지다. 밤, 도시, 비, 반사되는 빛, 내면의 걸음을 자연스럽게 품은 노래들은 Néon Noir로 간다. 사회의 벽, 무관심,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을 더 거칠게 바라보는 곡들은 Le Pavé를 부른다. 화면과 디지털 욕망, 역할, 이미지 뒤의 인간을 바라보는 노래들은 CAMLAND에 자리 잡는다.
하지만 나는 노래를 너무 일찍 가두고 싶지 않다. 노래는 색을 바꿀 권리도, 길을 잘못 들 권리도, 나중에 처음 생각했던 세계와는 다른 곳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낼 권리도 있어야 한다. 새로운 노래 하나가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프로젝트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대부분의 시작에는 글이 있다. 조각난 문장, 노트, 급하게 적어 둔 말,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와 노래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들. 어떤 곡은 이미 상당히 완성되어 있지만 아직 좋은 이웃, 좋은 울림, 자신에게 맞는 세계를 기다리고 있다. 곡은 준비되어 있어도 아직 대화해야 할 다른 노래들을 만나지 못했을 수 있다.
작업실에서 오가는 시선도 중요하다. 내 말은 다른 목소리와 관점, 감수성을 만난다. 대화 하나, 문화적 뉘앙스 하나, 예상하지 못한 반응 하나가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드러낼 수 있다. 때로는 그것이 노래를 열고, 때로는 곡의 색을 바꾼다. 그다음에야 질문이 온다. 이 노래는 어느 세계에 속하는가?
이런 방식은 내가 왜 고정된 글보다 노래 안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지도 설명해 준다. 글을 출판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최종 형태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하지만 내 말은 자주 움직인다. 노래는 말에 다른 호흡을 준다. 같은 글도 목소리, 편곡, 리듬의 긴장, 소리의 질감에 따라 다른 빛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버전을 끝없이 늘리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하나의 글에는 반드시 한 가지 존재 방식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어떤 음악적 색은 아이러니를 드러내고, 다른 색은 상처나 다정함, 분노를 더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 말은 같아도 닿는 방식은 달라진다.
내 기분도 들어간다. 나는 언제나 같은 내면에서 쓰지 않는다. 더 차분한 시기가 있고, 더 반항적인 시기가 있으며, 더 밝은 시기도 있다. FRED의 유니버스는 이런 움직임에서도 만들어진다. 삶의 순간, 충격, 평온, 충동, 거부 같은 인간의 상태를 따라간다.
그리고 만남이 있다. 어떤 만남은 몸짓 하나, 눈빛 하나, 문장 하나만 남긴다. 그것만으로도 노래가 될 수 있다. 어떤 만남은 하나의 세계 전체를 연다. 예를 들어 CAMLAND는 화면과 디지털 욕망에 대한 추상적인 아이디어만은 아니다. 한 만남의 흔적과, 그 만남을 통해 겉모습 뒤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을 함께 품고 있다.
때로는 노래가 잠든다. 이미 존재하고, 형태도 갖추고, 어쩌면 아주 좋은 모습까지 가지고 있지만 아직 제자리가 아닐 뿐이다. 그러면 기다린다. 그러다 대화 하나, 이미지 하나, 새 노래 하나, 점점 선명해지는 앨범 하나가 갑자기 그 곡을 다시 부른다. 멈춰 있던 것처럼 보였던 곡이 다시 당연해진다.
나는 가끔 농담처럼 내가 와인 만드는 사람처럼 일한다고 말한다. 말의 포도나무를 자라게 두고, 포도가 익기를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딴다고. 웃기는 비유지만 꽤 정확하다. 노래는 언제나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길러야 한다.
그래서 FRED의 프로젝트가 많아 보일 수 있다. 여러 문이 있고, 여러 유니버스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미 보이는 방향도 있고 아직 남겨 둔 방향도 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려는 산만함은 아니다. 노래가 움직이고, 이미지가 답하고, 목소리가 나타나면서 앨범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유기적인 방식이다.
그래서 FRED는 하나의 음악 장르 위에 서 있지 않다. 배경은 바뀔 수 있고, 음악도 바뀔 수 있으며, 빛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중심은 같다. 말, 목소리, 감정,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우리는 종종 “사람의 눈높이에서 노래한다”고 말한다. 아마 FRED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완전히 고정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움직인다. 다행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