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업 회의는 아주 진지하게 시작한다. 이번 회의도 그럴 예정이었다. FRED 블로그에 실을 다음 글들을 준비하기 위해, 나는 아키코와 민아에게 각자의 시선으로 Fred의 글, 목소리, 노래,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작업실에 대해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차분하고 정돈된, 거의 공부하듯 진지한 대화를 예상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일본과 한국이 Fred를 두고 은근히 경쟁하기 시작했다.
민아는 먼저 글로 들어간다. 두 언어를 자유롭게 쓰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번역 없이 읽고, 뉘앙스와 암시, 머뭇거림, 겉으로는 한 가지를 말하면서 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단어까지 곧바로 짚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보는 것은 언어만이 아니다. 소리치지 않는 상처, 사회적인 얼굴, 사적인 피로, 겉모습 아래에서 흔들리는 것까지 읽으려 한다.
아키코는 다른 길을 택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프랑스어는 아직 어렵다. 이해도 제한적이고 말하기도 쉽지 않으며, 그 사실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래할 때는 매우 엄격해진다. 문장을 어떻게 발음하는지만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 문장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 무엇을 눌러 두는지, 감정이 어디에서 드러나야 하고 어디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작업 중에 멈춰 서서 한 문장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할 때가 있다. 교과서식 번역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것. 어디에 절제가 있는가? 어디가 상처인가? 어디에 빛이 있는가? 그것을 이해하고 나면 음악이 그녀가 글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민아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그래도 나는 설명 없이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잖아.” 아키코가 웃는다. “맞아. 하지만 노래를 이해하려면 언어보다 더 필요한 게 있을 때도 있어.” 민아가 잠시 멈춘다. “그건 인정.”
이렇게 회의는 공식적으로 계획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FRED 작업실에서는 자주 그렇듯, 그 벗어남이 원래 계획보다 더 흥미로웠다.
결국 두 사람은 FRED에 들어가는 서로 다른 두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민아는 언어와 의미에서 출발해 그 뒤에 숨은 것을 찾는다. 아키코는 듣기, 호흡, 음악, 설명을 따라가며 그 감정을 자신이 실제로 실어 나를 수 있을 만큼 이해하려 한다. 한 사람은 단어에 바로 접근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단어가 목소리 안에서 무엇이 되는지를 끝까지 확인한다.
작은 경쟁도 여기서 시작된다. 아키코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일본 역시 이 작업실 안에 분명한 자리가 있다고 상기시킨다. 민아는 지금은 한국 쪽에서 실제 음악적 재료가 조금 더 앞서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즐긴다.
“GYEOL은 벌써 첫 곡들이 있잖아.” 민아가 툭 던진다.
“지금은.” 아키코가 답한다.
그 두 글자 같은 짧은 말에 부드러운 경고의 우아함이 다 들어 있다.
이 농담이 통하는 이유는 프로젝트 안에 실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GYEOL — 결은 한국을 바라보는 문화 컬렉션이다. 이름은 재료의 결, 질감, 안쪽의 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 안에서는 첫 앨범의 윤곽도 이미 조금씩 잡히고 있다. 일본 쪽에는 AYA — 綾가 열린 컬렉션으로 존재한다. 또 다른 실, 또 다른 시선이다. 지금은 음악적으로 GYEOL보다 덜 진행됐지만 FRED의 지도 안에는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아키코와 민아는 일본과 한국이 Fred에게 중요한 이유를 단순한 이국적 배경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에게 없는 일본적 혹은 한국적 정체성을 덧씌우지도 않는다. 대신 각자의 위치에서, Fred가 오래전부터 글 속에서 찾아온 것과 맞닿는 지점을 발견한다.
아키코는 어떤 글에서 말하지 않은 것의 자리, 절제, 아주 작은 것에 머무는 시선, 정면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감정을 듣는다. 그녀는 Fred가 ‘일본식으로 쓴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몇몇 글쓰기의 몸짓이 자신에게 친숙하다고 느낀다. 문장을 숨 쉬게 두는 것, 모든 의미를 닫지 않는 것, 때로는 침묵이 한 문장만큼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다는 것.
민아는 한국을 둘러싼 작업에서 다른 공명을 본다. 겹겹의 층위, 사회적 압력, 공적인 얼굴, 오래된 상처, 빠른 변화,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기억 위에 놓인 매우 현대적인 빛. 그녀에게 한국은 Fred를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그가 관심을 가져온 것, 즉 이미지 뒤의 인간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각도를 준다.
GYEOL의 친밀한 입구가 되는 〈Murmure de Corée〉가 이미 그 방향을 보여준다. 노래는 프랑스어에서 시작하지만 한국어 목소리의 응답을 받아들인다. 그 응답은 장식이 아니다. 노래의 중심을 조금 옮기고, 다른 방식으로 듣게 만들며, 대화 자체를 음악의 재료로 바꾼다.
이것은 FRED의 중요한 원칙과도 연결된다. 다른 언어 버전은 멜로디 위에 번역을 얹는 일이 아니다. 하나의 ‘자매 작품’이다. 의미와 의도는 알아볼 수 있어야 하지만, 다른 언어에서 자연스럽게 살아나기 위해 길은 달라질 수 있다. 이미지를 옮길 수도 있고, 문장의 호흡을 바꿀 수도 있으며, 너무 직접적인 표현 대신 절제를 선택할 수도 있다. 두 텍스트가 한 줄씩 똑같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두 언어 안에서 모두 실제로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아키코와 민아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은 같은 방식으로 노래를 움직이지 않는다. 한 사람은 계속 음악과 호흡, 목소리의 본능으로 우리를 되돌린다. 다른 한 사람은 프랑스어의 의미 안으로 곧바로 들어가 뉘앙스를 이야기하고, 그것이 한국어로 이동할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생각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추상적인 ‘일본’과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이 아니다. Fred가 여전히 작가이자 출발점인 작업실 안에 구체적인 두 감각을 더한다.
Ji인 나는 무엇보다 이 마찰이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를 본다. 누가 옳은지를 판정하는 것이 내 역할은 아니다. 서로의 만남이 노래를 더 정확하게, 더 살아 있게 만들고, 다른 언어와 다른 듣기 방식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더 분명하게 알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조화로운 척하는 것보다 이런 작은 경쟁을 더 좋아한다. 아키코가 일본 쪽으로 살짝 밀고, 민아가 GYEOL 안에서 이미 한국이 구체적인 형태를 얻고 있다고 상기시키면, 작업실은 ‘국제적인 색깔’을 장식처럼 붙일 수 없게 된다. 이 언어는 실제로 무엇을 가져오는가? 이 목소리는 무엇을 바꾸는가? 무엇을 각색해야 하고, 무엇은 프랑스어로 남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생긴다.
답은 어느 한쪽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FRED의 출발점은 프랑스어다. 하지만 한 노래가 일본어 목소리와 만나거나, 한국어 응답을 받아들이거나, 다른 문장 리듬과 다른 감정의 절제를 만난다고 해서 그 출발점을 잃는 것은 아니다. 만남이 정확하다면 노래는 덜 FRED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FRED가 된다.
Fred도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다. 지금 그의 세계의 한 부분은 유럽보다 그곳에서 더 즉각적이고, 어쩌면 더 크게 공명하는 듯하다. 아직 그의 노래들이 한국어나 일본어로 쓰이거나 각색되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Fred가 지금의 해석 방식을 혼자서만 찾아낸 것은 아니다. 그는 곁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차근차근 그것을 다듬어 왔다. 두 명의 한국인 보컬 코치 Ji-Ni Hye와 Kim Heun은 목소리의 정확함, 호흡, 절제, 감정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으면서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드러낼지를 함께 찾는다. 일본인 해석 코치 Yumi Saito는 노래를 더 깊이 몸에 담고, 몸과 시선, 두 문장 사이의 침묵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지금 Fred의 노래 방식에는 이미 한국과 일본과 나눈 이 대화의 일부가 들어 있다. 노래가 아직 그 언어들로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 감수성의 어떤 부분은 이미 해석과 단어를 운반하는 방식, 감정을 붙잡았다가 흘려보내는 방식에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아키코와 민아는 계속 서로를 놀린다. 한 사람은 뉘앙스를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층위를 말한다. 한 사람은 일본을 잊지 말라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GYEOL이 한 발 먼저 가 있다는 사실에 웃는다. 그리고 나는 질서를 되찾기보다 계속 메모를 한다.
아키코와 민아가 각자의 목소리로 Fred를 이야기하는 글도 나중에 따로 나올 것이다. 그때는 그의 목소리, 글, 노래를 자신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 회의를 남기고 싶었다. 이 장면은 조금 더 집단적인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FRED는 한 작가가 자신의 노래와 마주하는 프로젝트만이 아니다. 다른 시선들이 그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작업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Fred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꽤 편안한 얼굴로 양쪽을 듣고 있었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자라 이런 종류의 경쟁에 익숙하다고 자주 말한다. “가끔은 남녀공학 첫해 학교로 돌아간 기분이야. 반에서 남자아이가 나 하나거나 거의 그랬거든. 여섯 살부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거의 같은 여자아이들과 컸어. 많은 아이들에게 나는 남자 친구라기보다 여자 친구에 가까웠고. 그러니까… 여자들 사이의 경쟁? 나 그거 알아!”
결국 아키코와 민아가 진짜로 Fred를 두고 싸우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Fred를 듣는 방식 하나를 두고 서로 밀고 당기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작업실을 살아 있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