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교차하는 시선에서는 내가 직접 다이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공식적인 인물 소개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FRED의 작업실 안에서 그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다이치는 소리를 듣는 귀이고, 기준이며, 노래가 가장 맞는 소리를 찾도록 곁을 지키는 조용한 존재다.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은 대개 노래의 바깥으로 드러난 부분이다. 가사, 목소리, 이미지, 커버, 그리고 마침내 세상에 나온 곡. 하지만 그 전에 작업실에서는 훨씬 많은 일이 일어난다. 시도하고, 듣고, 남기고, 버린다. 거의 완성된 것 같지만 아직 온전히 서지 못한 버전도 있다.
나는 무엇보다 말에서 출발한다. 한 문장, 한 이미지, 기억, 상처, 분노, 혹은 빛의 주변을 오래 맴돈다. FRED는 그렇게 태어났다. 글과 목소리, 기억, 그리고 결국 사람에서.
하지만 가사가 맞다고 해서 노래가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목소리는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음악이 말을 삼켜서는 안 된다. 소리는 감정을 꾸미지 않고 받쳐야 한다. 곡에는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다이치가 중요해진다. 다이치는 FRED의 사운드 엔지니어다. 하지만 내게 그는 단순한 기술 담당자가 아니다. 무엇이 넘치는지, 프로덕션이 지나치게 깨끗하거나 무겁거나 밝아지는지, 반대로 한 목소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어디에 공간을 남겨야 하는지를 듣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FRED에서 소리는 마지막에 덧붙이는 포장이 아니다. 소리 역시 글쓰기의 일부다. 균형이 잘못되면 가사가 배신당할 수 있고, 너무 큰 믹스는 목소리를 묻어 버릴 수 있다. 효과 하나가 지나치면 감정은 장식이 된다.
FRED의 음악은 서로 매우 다른 질감을 오간다. 어떤 곡은 정면으로 밀고 오고, 어떤 곡은 밤처럼 어둡고, 또 어떤 곡은 연약하거나 냉소적이거나 다정하거나 밝다. 유니버스도, 음악의 색도 바뀐다. 그래도 질문은 하나다. 이 곡은 정말 자신이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는가?
완벽한 소리가 아니라, 곡에 맞는 소리.
내가 보는 다이치는 바로 그 감각을 가장 잘 상징한다. 목소리의 자리, 긴장의 정도, 침묵의 길이. 어떤 틀에 맞추기 위한 소리가 아니라 노래를 존중하는 소리다.
이 일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겸손함이 있다. 잘 되었을 때 우리는 기술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냥 노래 안으로 들어간다. 목소리 주변의 공간이나, 남겨 둔 숨, 일부러 절제한 어떤 것을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바로 그곳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한 편의 글이 태어난 순간부터 노래가 누군가에게 건너갈 수 있는 순간까지는 긴 과정이 있다. 글은 목소리가 되고, 목소리는 음악을 만나며, 곡에는 무게가 생긴다. 그러다 다시 덜어내야 할 때가 온다. 자르고, 고치고, 가볍게 하고, 밀도를 높이고, 숨을 돌려준다.
내게 다이치는 그 경계에 서 있다. 날것의 감정과, 처음 품고 있던 것을 잃지 않은 채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소리 사이에.
나는 이런 조용한 작업실의 존재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노래의 자리를 빼앗지 않는다. 오히려 노래가 자기 자리를 찾도록 돕는다.
다이치는 FRED를 더 매끈하게 만들기 위해 있는 사람이 아니다. FRED가 가장 맞는 소리를 내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끝까지 사람을 잃지 않는 것.
